대한민국 헌정 74년, 한덕수 국무총리가 내란죄로 징역 15년을 받는 날

 

역사는 이날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2025년 5월 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부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법정 최고형에 가까운 중형이다.

대한민국 헌정 역사 74년. 국무총리가 내란죄로 2심에서 실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문장 하나를 조용히 읽어보라. 이것이 오늘 일어난 일이다.

전쟁도 아니었다. 외세의 침략도 아니었다. 평화로운 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총리가 그 옆에 있었다. 군인들이 국회로 향했다. 시민들이 맨몸으로 막았다. 그리고 6시간 만에 계엄은 해제됐다.

그 6시간이 대한민국 헌정 역사에 영구적인 흠을 새겼다.

40년 엘리트의 종착역이 법정인 이유

한덕수를 단순히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면 이 사건의 본질을 놓친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수석, 통상교섭본부장, 주미대사, 국무총리. 대한민국이 설계한 엘리트 코스를 완벽하게 밟은 사람이다. 40년간 이 나라 권력의 핵심에서 국가를 운영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내란 가담자가 됐는가.

이 질문을 개인 도덕성으로 풀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구조로 풀어야 한다.

권력은 집중될수록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바꾼다. 감시받지 않는 자리는 서서히 판단력을 부식시킨다. 40년간 권력의 논리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어느 순간 권력의 논리 자체가 된다.

한덕수는 갑자기 변한 게 아니다. 그는 그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6시간의 계엄이 드러낸 민주주의의 취약성

비상계엄은 헌법 77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선포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그날 밤 대한민국은 전쟁 중이 아니었다. 사변도 없었다. 그런데 계엄은 선포됐고, 군인들은 국회로 향했다.

헌법이 규정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권력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들은 그날 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기능했는가.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의사당으로 들어갔다. 시민들은 국회 앞을 막았다.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제도가 막은 게 아니었다. 사람이 막았다.

그 차이를 생각해보라. 제도는 조건이 갖춰지면 언제든 다시 악용될 수 있다. 그날 밤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헌법 조문이 아니라 새벽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었다.

역사는 항상 그렇게 쓰인다.

법원이 징역 15년을 선고한 진짜 무게

2심 재판부가 중형을 선고한 배경에는 단순한 사실 인정 이상의 메시지가 있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이 죄목은 단순 가담이 아니다. 내란의 핵심 실행 구조에 직접 연루됐다는 판단이다. 국무총리라는 직위가 오히려 가중 요인으로 작용했다. 헌정 질서 수호 의무를 가진 자가 그것을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는 논리다.

법원은 이 판결로 하나의 원칙을 새겼다. 권력의 크기와 책임은 비례한다.

이 원칙이 한국 사법 역사에 실제로 적용된 선례가 됐다는 것은 중요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쌓아온 사법적 독립의 누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판결은 대법원 상고로 넘어간다. 최종 확정까지 법적 공방은 계속된다. 일부는 정치 보복이라고 부를 것이다. 일부는 정의의 실현이라고 부를 것이다. 두 해석이 충돌하는 동안 이 나라는 또 한 번 분열의 소음을 통과한다.

그 소음이 끝날 때 무엇이 남는가.

선고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

한덕수가 감옥에 가도 계엄을 가능하게 한 헌법 조문은 그대로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구조도 그대로다. 권력 주변에서 그 논리에 동화되어 가는 엘리트의 생태도 그대로다. 처벌은 사후에 이루어지고, 구조는 사전에 작동한다.

이것이 이 판결이 가진 역사적 한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이 사건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누구를 처벌했는가'가 아니다. '어떤 구조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는가'이다. 처벌은 이미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후 정산이다. 예방은 구조 개혁에서만 나온다.

그 개혁을 누가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내놓지 않으면 15년 선고는 카타르시스로만 소비된다.

정의가 집행됐다는 안도감이 구조 개혁의 긴장감을 대체할 때, 다음 사건은 이미 잉태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는 더 잔인하게.

이 사건이 당신의 삶에 묻는 질문

징역 15년 선고를 뉴스로 소비하고 끝내는 것은 자유다.

그런데 잠깐, 이 사건을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하나의 물음에 닿는다.

당신은 어떤 구조 안에 살고 있는가.

직장, 가족, 자산, 관계. 당신이 속한 모든 구조는 그 논리로 당신을 형성한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이 엘리트를 내란 가담자로 만든 것처럼, 의심하지 않는 구조는 개인을 조용히 그 논리의 산물로 만든다.

생각하지 않으면 구조가 대신 생각한다. 선택하지 않으면 구조가 대신 선택한다.

한덕수의 40년이 그 증거다. 40년간 구조의 논리를 따른 사람의 종착역이 법정이었다.

당신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그 질문을 오늘 품고 잠든다면, 내일 아침 당신의 생각은 어제와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 작은 차이가 믿음이 되고, 믿음이 쌓이면 행동이 바뀐다. 행동이 바뀌면 구조와의 관계가 달라진다.

역사는 항상 그렇게, 구조를 의심한 개인들로부터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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